안녕하세요~ 마크로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2년, 한국은 월드컵으로 한창인 이때 어머니께서는 갑자기 느닺없이 미국 가자고 해서 칼국수 한그릇때리고 무슨 서울대공원 가는 지하철 태우듯이 비행기를 태우시고 저희는 그렇게 미국으로 왔습니다. 아빠 엄마 나 형.
당시 막 이민 온 사람들은 다른 한국인들의 좋은 먹이감이었습니다. 현찰을 들고 오니까요. 누가 그러더군요. 같은 동족들 접근해서 빼먹는건 인도하고 한국 사람들 밖에 없다고.. 저희 부모님도 사람들 정보에 속아서 가져온 돈 탈탈 털려서 가족 모두 졸지에 하루살이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세월은 흐르고 저는 나이만 먹고 있더라고요.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한국이었으면 이미 늦었어 라며 일찌감치 포기했을텐데 주위에 보면 늦게라도 마음잡고 시작해서도 자리 잡으시는분들이 많이 보여서 저도 용기를 얻고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시간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더니 뭘 어디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대학교 학위가 없는 제가 할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았고, 그래도 옷 차려입고 출 퇴근 하는 직업이면 좋겠다는 마음에 보험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근데 워낙 제가 앳되보이는 데다가 영어는 부족하고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저한테 보험을 안들더라구요. 생각해보면 저도 스물몇살짜리한테 몇억씩 되는 보험 안들거 같아요. 그렇게 가족들만 보험에 끌어넣고 그만뒀습니다.
그래도 사람들 만나면서 좋은 정보를 얻은게 대부분 좋은집 살고 돈 많아 보이는 사람들 보면 전문직, 본인사업, 회사간부 분들이신데 희한하게도 IT 관련 일 하시는분들 만나보면 꼭 고위포지션이 아니더라도 여유롭게 사시더라구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꿈을 품어 봤습니다. 나도 IT 관련된 업무를 해야겠다...
먼저 형에게 상담했습니다. 저희형은 하고싶으면 무조건 추친하라 주의입니다. 대신 외로운 싸움을 혼자 이겨낼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말라는 스타일.. 학교에 다시 입학해서 IT 를 하기에는 시간+돈 너무 많이 들어가서 코딩 특수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미친듯이 코딩만 했습니다.
직장 출퇴근 하듯이 아침에 시작해서 밤에 나오는식으로 코딩만 했어요. 이게 맞는건가 싶으면서도 몸은 하루 8시간 많을땐 12시간씩 코딩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적어도 5번씩은 고민했던거 같아요. 그만둘까. 지금이라도 다른일 할까. 너무 외롭고 지루햇어요.
그렇게 8달 동안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샤워하면서 코딩, 앉아서 코딩, 서서 코딩, 점심 먹으면서 코딩 강의, 화장실에 앉아서 안풀리던 코딩 생각, 자기전 침대에 누워서 내일할 코딩 오늘 안풀린 코딩 상상하면서 잠들었어요.
제일 불안했던건 이게 다 헛고생일까봐 겁났습니다. 뭔가 확실하게 보장이 된다면 버티겠는데 그런 확신을 아무도 못주니 자꾸 흔들리더라구요. 그 와중에 틈틈히 일당치기 일도 찾아서 했습니다. 살려면 돈이 필요 하니까요.
코스가 거의 끝나가고 어느정도 자신감이 붙는 시점부터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이력서도 보내기 시작했었죠. 자신감이 한참 올라온 시점이어서 솔직히 금방 취직 될줄 알았어요.
연봉 욕심 안낼테니 어디든 취직만 시켜줘라 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저희 집 근처에서 자주 눈에 띄던 회사들 위주로 보냈습니다. 연락이 없습니다. 하나씩 탈락 이메일이 오기 시작했습지만 이때만 해도 아직 마음의 여유가 있었어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싸이트는 Indeed.com, linkedin을 주로 이용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거절 이메일들이 쌓여가고 제가 지원하는곳은 점점 저의 집에서 반경이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이주 삼주 사주 시간이 흐르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가뭄에 콩나듯 연락이 오면 첫질문이 학위는 없는거냐고 물어 보는거였습니다. 없다고 그러면 벌써 목소리에서 실망이 느껴지는데 수많은 대졸자들을 두고 나를 뽑을까 하는 의심이 끊이지 않더군요.
그때 꾸준하게 용기를 주고 얼르고 달래고 쓴소리하고 옆에서 희망을 준게 저희 형이었습니다. 저희형도 가족이다 보니 당연히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아무래도 사회경험이 저보다는 조금더 있었고 일단 생각하는 방식이나 멘탈이 좀 달라요. 그래서 제가 심적으로 많이 의지 했었습니다.
원래 첫 직장은 잡는게 어렵고 제일 오래 걸린다. 평균적으로 1000개 이상의 이력서를 넣어야 한다는 링크 같은거 찾아서 보여주고 1000개 채우기 전에는 시작점에 선거도 아니라고 잔소리+용기를 복돋아 줫습니다. 저도 1000개까지는 하고 포기하겠다 라고 다짐하고 다시 이력서 돌리기에 몰입했습니다.
구라쟁이.. 1000개는 무슨.... 제가 센거까지가 1200개였습니다. 이쯤되니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이제 더이상 지원서를 넣을곳이 없었습니다. 할만큼 한거 같다며 그만 두겠다고 했습니다. 저희 형도 동의했습니다. 한주만 더 해보고 안되면 다른일 하면서 이력서만이라도 계속 넣으면 되니까 그렇게 하자 정도로 합의를 봣습니다. 한주는 금방 흘러갔고 역시나 연락은 없었어요.
우울증 오더라고요. 암울하고 우울하고 스트레스로 괴로워 하며 새벽에 멍 때리고 있는데 와이프가 조심스럽게 부릅니다. 새벽 두시였어요. 정확하게 기억 나네요. 여보.. 우리 병원 가야할거 같애. 양수가 터진거 같애...
병원가면서 속으로 별생각 다했습니다. 내가 너무 오래 돈을 못가져다줘서 스트레스 받아서 양수가 터진건가, 나때문에 맘고생 하고 있어서 그런건가.... 얼마나 와이프한테 미안하고, 내가 초라하고 비참하고 바보같고 그러던지.... 18시간만에 애기는 건강하게 잘 태어났습니다. 눈도 못뜨고 울다가 엄마품에서 조용히 안겨잇는 아이를 보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리고는 이를 다시 악물엇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 이녀석한테 짐을 지어줄순 없다. 내가 와이프하고 내새끼는 어떻게해서는 굶기지 않으리라.
퇴원하자 마자 바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정신 하나도 없었어요. 와이프 돌보랴, 애기 케어하랴, 이력서 넣으랴, 전화 받으랴. 누구라도 이메일로 주소를 얻으면 적극적으로 어필햇습니다. 나 할수있다. 시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 놓겠다. 그렇게 필사적인 제 마음을 알았는지 어느날 이멜을 하나 받았습니다.
띵똥~ 마르코~ 우리랑 인터뷰 한번 보자. 이메일 보는대로 통화 괜찮은 시간 알려줘.
하지만 크게 기쁘지 않았어요. 왜냐면 보통 전화오면 학위 있냐고 묻고 없다고 그러면 실망하고 대충 마무리 짓거든요.
이번엔 전화 오자마자 말했습니다. 나 대졸아니야.
그쪽에서 그러더군요. 알어.
그리고 몇가지 이력서에 관한 질문하고 대답하니 면접 날짜를 주더군요. 위치는 좀 멀긴 했는데 그런거 가릴 처지가 아니잖아요 ㅎㅎㅎㅎㅎㅎ
면접 잡혔다고 와이프 보여줬더니 그렇게 기뻐 하더라구요. 임신중에 힘들어하고, 출산중에 고통스러워하고, 지난 몇달간 사색이었는데 인터뷰 간다고 하니까 환하게 웃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나때문에 맘 고생 많았을텐데 한번도 불만표시 안하고 응원해준거 생각하니 눈물이 폭포처럼 고이는데 흐르진 않았습니다. 형한테 인터뷰 간다고 사진 보냈더니 세무조사 하러 가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코트는 두고 갔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한만큼 잘하진 못했습니다. 스스로한테 너무 화가 나더라구요. 또 떨어졌구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와이프한테 이소식을 어떻게 전해야하나. 너무 서글펐습니다.
도착해서 죄인처럼 문을 끼익 열었더니 와이프가 웃으면서 반겨줍니다. "떨어졌구나?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그런거같아 ㅎㅎㅎㅎㅎ" 라고 대답하고 더이상 와이프를 못 쳐다보겠어서 다시 컴퓨터에 앉아서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늦게 이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마르코!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웠어. 우리는 너랑 같이 일하고 싶어. 여기 서류들 읽어보고 싸인해서 보내줘. xx일부터 출근하는걸로 했는데 혹시 수정필요하면 얘기해줘."
울었어요. 정말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터져 나와서 도져히 못참겠더라고요. 혼자서 조용히 오열했습니다.
혹시나 내가 잘못 해석한건가, 서류들이 가짜는 아닌가, 불러다가 장기매매 하려는건 아닌가 일단 형한테 죄다 보냈습니다. 읽어보고 진짜로 취직서류 맞냐고. 다시 취소되거나 하는건 아닌 거냐고. 형에게 두번 세번 물어봤습니다.
그렇게 길었던 장장 일년간의 노력이 보상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하네요.
단언컨데 제 인생의 가장 큰 변환점이었습니다. 실리콘벨리의 누구들처럼 몇억 씩 버는건 아니지만 저는 지금 제 삶에 너무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치 앞도 안보이던 미래가 이제 내년, 후년을 현실적으로 계획할수 있다는것에 너무 행복합니다.
그 감동의 첫번째 회사는 1년정도 후에 몸값 올려서 이직햇어요.
예전부터 저희형한테 정부랑 일하는 회사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서 1년정도 일하다가 거버먼트 컨트랙터 회사로 옮겼습니다. 한번 취직하고 나니 연락도 많이 오고 이직하기도 상대적으로 엄청 쉽더라고요. 심리적 안정때문에 그런지 인터뷰도 잘되고요.
이렇게 쭉 쓰다 보니까 저도 초심을 많이 잃었네요ㅎㅎㅎㅎㅎ 뭐든 시켜만 줘라. 밤 12시까지도 일할수있다!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순간 [일보다는 가정 + 가족과 보내는 시간] 들이 더 중요하지 로 변했다가 요즘은 [내가 취미를 포기하고 일을 할순 없자나!] 라는 마인드네요..
그래도 팀에서 일 제일 빨라요. 저도 초보인데 저보다 경력많은분들에 비해서도 월등이 잘한다고 늘 칭찬 받습니다. 역시 한국인의 파워!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포스팅부터는 실직적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얘기해볼께요. 긴글 끝가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은 하루 되셨으면 합니다. 또 놀러와주세요!